AI Trend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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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게 탄 두루마리 안쪽을 빛이 투과해 겹겹의 층이 드러나는 모습을 은유한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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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탄 두루마리를 펴지 않고 읽다, 2천 년 전 헤르쿨라네움 파피루스와 AI

    베수비오 화산에 숯덩이가 된 두루마리를 CT와 AI로 처음 끝까지 가상으로 펼쳤다. 2026년 6월 발표에서 실제로 읽어 낸 것과 과장된 부분을 나눠 정리했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로마의 도시 헤르쿨라네움의 한 저택 도서관이 화산재에 묻혔다. 그 안의 파피루스 두루마리들은 불에 타 숯덩이가 됐고, 펼치려고 하면 부서져 버렸다. 2천 년 가까이 읽을 수 없던 이 두루마리 가운데 한 권이 2026년 6월, 손대지 않은 채 처음으로 끝까지 가상으로 펼쳐졌다. 글자를 찾아낸 것은 잉크를 알아보도록 학습한 AI였다.

    무슨 일이 있었나

    2026년 6월 25일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학회에서 연구진은 두루마리 PHerc. 1667을 가상으로 완전히 펼쳤다고 발표했다. 헤르쿨라네움 두루마리 가운데 처음 있는 일이다. AP 통신을 인용한 CP24 보도에 따르면 펼쳐진 면은 약 1.5미터, 20단에 이른다.

    항목내용
    대상PHerc. 1667 (높이 약 8cm, 지름 약 2cm로 남은 두루마리 조각)
    발표2026년 6월 25일, 나폴리 학회
    펼친 범위약 1.5m, 20단 분량의 면
    해석나폴리 페데리코 2세 대학 페데리카 니콜라르디 팀
    추정 연대기원전 2세기, 또는 기원전 3세기 말 (잠정)

    이 두루마리는 1980년대에 일부를 펼치려다 손상됐고, 겹친 층 때문에 당시 판독 가능성 점수는 0이었다. 니콜라르디는 “완전히 읽을 수 없다고 여겨지던 두루마리”였다고 말했다.

    어떻게 펴지 않고 읽었나

    과정은 세 단계로 나뉜다.

    1. CT 촬영. 말리고 뒤틀린 두루마리를 통째로 고해상도 CT로 찍는다.
    2. 가상 펼치기. 단면 영상에서 휘어진 파피루스 층을 따라가며 표면을 찾아 평평하게 편다.
    3. 잉크 찾기. 탄소 잉크는 숯이 된 파피루스와 CT 영상에서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그래서 미세한 질감 차이로 잉크를 알아보도록 학습한 머신러닝 모델이 글자를 드러낸다.

    이 방법을 세상에 알린 것은 2023년 시작된 베수비오 챌린지다. 켄터키 대학의 브렌트 실스와 투자자 냇 프리드먼, 대니얼 그로스가 상금을 걸고 전 세계 개발자에게 데이터를 공개했다. 2023년 대학생 참가자가 두루마리 속 첫 단어를 읽어 냈고, 2024년 초에는 여러 단락을 읽어 낸 팀이 대상을 받았다. 이번 성과는 단어나 단락을 넘어 두루마리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펼쳤다는 데 의미가 있다.

    검게 탄 헤르쿨라네움 파피루스 조각들을 확대 촬영한 사진
    헤르쿨라네움 파피루스 조각 PHerc. 1103과 PHerc. 110. 숯처럼 검게 변해 맨눈으로는 글자를 거의 구별할 수 없다. 이미지: Sara Stabile 외, Wikimedia Commons, CC BY 4.0.

    두루마리에는 무엇이 적혀 있었나

    내용은 윤리와 기술, 인간 행동에 관한 철학적 논의로 보인다. 연구진은 스토아 철학의 개념인 충동(hormē)과 실천적 지혜(phronēsis)가 언급된다고 설명했다. 행동을 다스리지 못하면 해로운 감정에 휩쓸리거나 목표에서 멀어진다는 경고도 담겨 있다. 번역된 한 문장은 이렇다.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우리 자신과 우리 본성에서 벗어난다면, 무언가를 탐구하더라도 붙잡지 못할 것이다.”

    같은 발표에서 다른 두루마리 PHerc. 139가 철학자 필로데모스의 『신들에 관하여』 8권이라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 사건이 보여 주는 것은 AI가 “새 글을 쓰는” 기술만이 아니라 “사라진 글을 되찾는” 기술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사람이 끝까지 해야 하는 일은 여전히 읽고 해석하는 쪽이다.

    왜 AI가 필요했나

    잉크 찾기는 사람이 눈으로 하기 어려운 작업이다. CT 영상에서 잉크와 파피루스의 밀도 차이가 거의 없어서, 미세한 균열 무늬 같은 질감을 수많은 사례로 학습한 모델이 있어야 글자가 드러난다. 학습 데이터가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부 확인된 글자를 바탕으로 모델을 키워 나간 방식은, 데이터가 부족한 분야에서 AI를 쓰는 전형적인 패턴이기도 하다. 이런 기술적 배경은 멀티모달 AI 글에서 다룬 “이미지를 이해하는 모델”의 연장선에 있다.

    확인된 것과 아직 모르는 것

    • “완전 해독”은 과장이다. 일부 매체는 두루마리를 완전히 해독했다고 보도했지만, 확인된 성과는 남은 조각 전체를 가상으로 펼치고 넓은 영역의 글자를 읽어 낸 것이다. 한 파피루스 학자는 “두루마리 전체가 남은 것은 아니지만, 남은 물체는 끝까지 펼쳤다”고 정리했다.
    • 저자는 모른다. 스토아 철학으로 보이는 근거는 내용이지 저자 표기가 아니다.
    • 연대는 잠정적이다. 필체와 내용으로 추정한 값이다.
    • 남은 두루마리가 많다. 헤르쿨라네움에서 나온 두루마리는 수백 점이고, 실스는 이제 전문가들이 텍스트를 읽고 편집하고 해석해야 할 단계라고 말했다.

    정리

    화산에 탄 두루마리를 펴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낸 일은 CT, 가상 펼치기, 잉크를 찾는 AI가 맞물려 가능했다. 과장 보도와 달리 아직 모든 글자를 읽은 것은 아니지만, 2천 년 동안 닫혀 있던 도서관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