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도입 검토에서 기술 논의는 대체로 빨리 끝나고, 일정은 안전 검토에서 늘어진다. 펜스 안에서 도는 산업용 로봇과 사람 옆에서 움직이는 로봇은 통과해야 할 관문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영역은 2025년에 국제 규격이 크게 손질되면서 기준 자체가 바뀌었다.
협동로봇이라는 말이 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용어다. 개정된 규격에서는 협동로봇, 협동운전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대신 협동 적용(collaborative application)이라는 말을 쓴다.
말장난처럼 보이지만 실무에서는 중요한 구분이다. 로봇 자체가 안전한 것이 아니라, 그 로봇이 어떤 작업을 어떤 배치로 수행하느냐가 안전을 결정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같은 로봇 팔이라도 끝에 칼날을 달면 협동 적용이 아니다.

2025년 개정으로 달라진 것
국제 로봇 안전 규격 ISO 10218은 2025년에 개정되면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크게 바뀌었다. 주요 변화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 변화 | 내용 |
|---|---|
| 기술 문서 통합 | 힘과 압력 한계를 다루던 별도 기술 규격(ISO/TS 15066)이 본 규격 안으로 흡수 |
| 사이버보안 추가 | 로봇 안전에 영향을 주는 범위에서 보안 요구사항이 규격에 포함 |
| 기능 안전 명확화 | 안전 기능의 신뢰성 요구가 정리되고 로봇 분류 기준이 추가 |
사이버보안이 안전 규격에 들어온 것이 이번 개정의 성격을 보여준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로봇에서는 원격 침입이 곧 물리적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유럽의 새 기계 규정과 맞물린다
일정 측면에서 함께 봐야 할 것이 유럽의 기계 규정이다. 2027년 1월부터 적용되는 이 규정은 기능 안전과 사이버보안, 디지털 문서화를 CE 마킹의 필수 요구사항으로 묶는다. 자율 이동 기계와 AI가 포함된 기계를 명시적으로 다루는 것도 이전과 달라진 점이다.
유럽에 장비를 파는 기업이라면 개정 규격 대응과 규정 대응이 사실상 한 묶음이다. 국내에서만 쓰더라도, 장비 공급사가 이 기준으로 제품을 바꾸면 사양과 가격이 함께 따라온다.
안전 규격은 로봇을 못 쓰게 막는 장치가 아니라, 펜스를 걷어내도 되는 조건을 명문화한 장치다. 기준이 명확해질수록 사람 옆에 둘 수 있는 로봇의 범위도 넓어진다.
도입 실무에서 자주 놓치는 것
- 위험성 평가는 우리 몫이다. 로봇 제조사의 인증은 로봇에 대한 것이고, 그 로봇으로 구성한 작업 셀의 평가 책임은 사용하는 쪽에 있다.
- 끝단 장비가 판단을 바꾼다. 그리퍼, 공구, 운반물의 형태와 무게가 바뀌면 같은 로봇이라도 평가를 다시 해야 한다.
- 속도와 힘은 교환 대상이다.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안전을 확보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속도와 힘을 제한하는 것이고, 이는 생산성 저하로 이어진다. 이 교환을 견적 단계에서 반영해야 한다.
- 문서가 산출물이다. 개정 규격과 유럽 규정 모두 문서화 요구가 강해졌다. 설계 근거와 평가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나중에 소급하기 어렵다.
정리
사람 옆에서 일하는 로봇의 기준은 2025년 규격 개정으로 다시 정리됐다. 핵심은 안전한 로봇이라는 범주가 아니라 안전한 작업 구성이라는 관점이며, 사이버보안이 안전 요구에 포함된 것이 이번 변화의 성격을 보여준다. 2027년부터 적용되는 유럽 기계 규정과 맞물리면서 문서화 부담도 함께 늘어난다. 도입을 검토한다면 로봇 사양보다 작업 셀 단위의 위험성 평가 일정을 먼저 잡는 편이 현실적이다.